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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동본금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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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성적 자기결정권, 특히 혼인의 상대방결정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의 동성동본금혼규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사건이다.

민법 제809조 제1항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법률조항과 관련하여 동성동본제도가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의 하나임을 강조하는 유림(儒林)측과 위 법률조항이 뚜렷한 유전학적 근거도 없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금혼범위를 설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우위의 가부장제도의 유산임을 부각시키면서 그 폐지 내지 개정을 주장해 온 여성계 등 사이에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었다. 국회는 그동안 3차례에 걸쳐 '혼인에관한특례법'을 시행하여 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혼인생활 및 자녀교육 등에 있어서 고통을 겪어온 많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의 사실혼을 구제한 적도 있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던 중 결국 위 법률조항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동성동본(同姓同本)인 자와 혼인하려 하는 제청신청인들은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아니한 처분에 대하여 서울가정법원에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고 동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1995년 5월 17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이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속된 이후 유림에서는 재판관들에게 탄원서 공세를 펼치는 등 위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을 막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나. 결정의 주요내용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동성동본금혼제를 규정한 민법 제809조 제1항과 관련된 시대적 배경을 언급하면서 위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의 결정을 하였다.

우리 민법은 제809조 제1항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법률조항에 의하여 금지되는 근친혼의 범위 자체가 다른 입법례에 비하여 매우 광범위함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809조 제1항은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의 혼인을 그 촌수의 원근을 불문하고 모두 취소사유로 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혼인신고 자체를 수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회는 동성동본금혼제가 생성하여 정착할 수 있었던 시대와는 달리 판이하게 변화하여 동성동본제의 제도적 토대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즉 첫째, 현대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근본이념으로 신분적 계급제도와 남존여비사상을 배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고 이에 따라 헌법도 제36조 제1항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의 바탕위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이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까지 규정하고 있으며, 둘째, 이에 맞추어 국민 대다수의 혼인관(婚姻觀)이 주로 집안(家)과 집안(家)간의 결합이라는 관념에서 혼인당사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한 인격 대 인격의 결합이라는 관념으로 바뀌었고 가족의 관념이나 형태도 대체로 가부장적 대가족에서 분화된 핵가족으로 바뀌었으며 또 건국이래 꾸준한 여성교육의 확대로 인한 남녀평등관념이 정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셋째, 봉건적·폐쇄적인 농경중심 내지 자급자족 원칙의 농경사회가 고도로 발달된 산업사회로 바뀌었고 특히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로 김해(金海) 김씨(金氏)나 전주(全州) 이씨(李氏), 밀양(密陽) 박씨(朴氏)와 같은 대성(大姓)의 경우 1985년도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그 인구가 각각 약 3,892,342명과 2,379,537명 및 2,704,819명이 되어 이제는 동성동본이라는 것이 금혼의 기준으로서 그 합리성을 인정받기가 어렵게 되었고 특히 인구의 도시집중화와 관련하여 가(家) 내지 본관에 관한 관념이 차츰 희박해지고 있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평가를 기초로 판단할 때 민법 제809조 제1항은 금혼규정으로서의 사회적 타당성 내지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음과 아울러 성적 자기결정권 특히 혼인의 자유와 혼인에 있어서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고 있는 자기운명결정권의 근거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이념 및 규정(제10조)과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유지라는 헌법규정(제36조 제1항)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또 그 금혼의 범위를 동성동본인 혈족, 즉 남계혈족에만 한정하여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하고 있는데 이를 시인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제11조)에도 위반되며 그 입법목적이 이제는 혼인에 관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사회질서나 공공복리에 해당될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된다고 판단된다.

결국 위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재화, 조승형 재판관을 제외한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나 정경식, 고중석 재판관은 국회의 입법형성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위 법률조항에 대하여 곧바로 위헌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용준, 김문희, 황도연, 신창언, 이영모 재판관 등 5인의 단순위헌의견이 다수의견이기는 하지만 헌법 제113조 제1항에 규정된 법률의 위헌결정을 함에 필요한 심판정족수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헌법재판소는 위 두 의견이 일치되는 최대공약수인 헌법불합치의 결정을 선고하였고 동시에 위 법률조항에 대한 적용정지명령과 함께 1998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개선명령을 입법자에게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1999년 1월 1일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재화, 조승형 재판관은 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국민의 행복추구권 즉 혼인의 자유와 상대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등이 제한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며 이 법률조항이 남계혈족만을 기준으로 동성동본인 혈족간의 혼인을 금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민법은 가족법상 전통관습의 법제화라는 입장에서 이 법률조항을 둔 것이므로 이를 합리성이 없는 자의적 남녀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다. 사후경과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으로 동성동본금혼조항의 적용이 정지됨으로써 그 규정 때문에 그동안 사실혼관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최고 20만쌍으로 추정되는 남녀가 법적 부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곧바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어 이들의 자녀도 혼인외의 자(子)라는 굴레를 벗을 수 있게 되었고 배우자들은 의료보험, 가족수당, 세금공제 등 종전에 누리지 못했던 혜택을 받게 되었다. 한편 그동안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던 관련 가족법 개정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이 결정에 대하여 유림에서는 "매국의 단계를 뛰어넘어 치욕스럽게 내려진 매족(賣族)의 결정이다."고 비난한 반면 여성계에서는 "잔잔한 발표였지만 시대의 변화속에서 악습이 무너지는 천둥같은 소리였다."는 환영을 표시하였다(조선일보 1997. 7. 17.). 한편 "실효성없는 구시대 유물에 종지부를 찍었다."든지(한국일보 1997. 7. 17.), "남녀평등를 부각한 진보적 판단으로서 가부장적 관념을 폐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한겨레신문 1997. 7. 17.).

한편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고 선언함에 따라 위 법률조항이 개정될 때까지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의 혼인신고가 있는 경우 그에 대한 호적사무의 처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새로이 정했다. 호적예규의 일부를 개정하여 먼저 동성동본인 자 간의 혼인신고는 자녀를 출생하였더라도 수리할 수 없다는 예규(대법원 호적예규 제172호), 동성동본인 자 간의 혼인신고가 과오로 수리된 경우의 효력에 관한 예규(대법원 호적예규 제176호)를 각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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