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3개월 사랑하고 3년을 싸우고 30년을 참고 견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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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전생의 원수가 다시 만나 한평생 함께 살면서 서로 원수 갚는 일, 빚 갚는 일이라고들 한다. 하고한 날 지지고 볶으면서도 그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5월 21일은 올해 정부가 법정 기념일로 정한 첫 ‘부부의 날’이었다. 부부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평등 부부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제정했다고 한다. 날짜엔 ‘가정의 달(5월)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들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부부들의 사연이 넘쳐났다. 그러나 결혼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어찌 하루뿐일까. 부부 합일의 이치는 국어학자 이희승이 이미 오래전에 설파했다. ‘별다른 개성을 가진 남녀가 결합해 한 개의 인격이 된다는 데는 거기서 벌써 협동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부부 간의 협동이란 1+1=2가 아니라 1+1=1이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의 개성은 반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은 죽이고 반만 살리는 것이다. 반을 죽인다는 것은 희생이요, 반을 살린다는 것은 사랑이다. 희생의 정신과 애정, 이 두 가지가 없이 부부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유대 금언집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二人三脚)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쓰러진다. 함민복은 그걸 상(床) 들기에서 보아냈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춰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부부’ 결혼이란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지는 일이 아니다.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기다. 구전(口傳)으로 떠도는 굴비 장수 이야기에서 오탁번이 그려낸 부부의 모습은 바보스럽고 슬프고 우습다. 익살스런 외설도 있다. 결혼이란 웃음에 슬픔을 버무린 연민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특별하고 엄숙한 말 대신 조금 모자란 듯, 그러나 인간적인 바보 부부 이야기를 능청맞게 하면서 부부란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 오탁번 ‘굴비’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엔 눈을 반쯤 감으라는 말이 있다. 3주 동안 서로 연구하고, 3개월 동안 사랑하고, 3년 동안 싸움 하고, 30년 동안은 참고 견딘다. 결혼이란 여러 번에 걸쳐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 ▲ illust 권오택 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뭐…. 임영조 ‘도꼬마리씨 하나’에서 미국에 오래 산 의사 시인 마종기의 산문집에 친구인 재미 내과의사 부부 얘기가 나온다. 이 내과의는 30년 넘게 백인 아내와 살고 있다. 마종기는 친구가 모처럼 서울에 간다고 하자, 가거든 영화 ‘서편제’를 보라고 일렀다. 한국에 온 내과의는 아내와 함께 극장에서 ‘서편제’를 봤다. 영화가 끝나 곁에 있던 아내를 보니 눈물을 닦느라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신 놓고 영화를 보며 우느라 아내 볼 틈도 없었는데 같이 계속 운 모양이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남편이 물었다. 한국 판소리를 알 리 없고 영어 자막이 없어 줄거리도 잘 모를 텐데 어떻게 그렇게 울었느냐고. 아내가 답했다. 물론 음악도 못 들어 본 것이고 이야기도 짐작으로밖에는 모르겠더라. 당신의 눈물을 보며 처음엔 놀라고 당황했는데 천천히 내 가슴도 아파 오더라. 당신이 나중엔 흐느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며 나도 따라 울게 됐다. 당신이 고국을 오랫동안 떠나 살고 있어서 그 외로움 때문에 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자라온 환경도, 문화도, 말도, 피부 빛도 다른 남녀가 고락(苦樂)을 함께 하면서 서로 아주 조금씩 닮아간다.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말투, 얼굴까지 비슷해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쌓인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심심상인(心心相印)이다. 부부로 만난 우리, 왜 하필 나이고 당신인가. 그것은 우연인가 운명인가. 시인 남편의 눈에 아내는 어느 날 산행길 바짓가랑이에 묻어 온 도꼬마리씨다. ‘멀고 긴 산행길/ 어느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아찔한 벼랑을 지나/ 덤불 속 같은 세월에 할퀸/ 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 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억센 가시손 하나/ 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뭐….’ - 임영조 ‘도꼬마리씨 하나’ 우연 같지만 필연이고 운명인 것이 부부다. 이러구러 한평생 서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다. 시인 남편이 아내를 떼려야 떼어놓지 못할 사람이라고 노래하듯 시인 아내에게도 남편은 그런 존재다. 그 숙명의 매개체가 바로 자식이라고 말하는 게 각별히 와 닿는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 문정희 ‘남편’ 출처 : 디지틀 조선일보/와플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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